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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보물이니 꼭 되찾아와야 합니다." 1971년 윤장섭 성보실업 회장에게 고향 선배 황수영(1918~2011)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연락했다. 고려 사경(寫經) 한 점이 일본에서 나왔다고 했다. 막 고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윤장섭은 만사 제쳐두고 일본으로 갔다. 재일교포인 사경 주인이 커다란 오동나무 함을 품에 안고 나타났다. 유려한 필체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경문, 가는 붓에 금니를 찍어 그린 섬세한 변상도(變相圖·불경의 내용을 표현한 그림)…. 훗날 국보 211호로 지정된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이다.

간송 전형필, 호암 이병철과 함께 국내 3대 문화재 수집가로 꼽히는 호림(湖林) 윤장섭(94) 성보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난 1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유화증권과 성보실업을 만든 기업인이지만 호림박물관을 세운 컬렉터로 더 이름을 알렸다. 1922년 개성에서 태어난 그는 개성공립상업학교에 다닐 때 미술사학자 우현(又玄) 고유섭(1905~1944)의 특강을 듣고 문화재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황수영, 국립박물관 개성분관장을 지낸 진홍섭 등 박물관계 '개성 3걸(傑)'과 어울리며 문화재 수집에 뛰어들었다.

1982년 사재를 출연해 서울 대치동 상가 3층에 호림박물관을 열었고 1999년 호림박물관 신림 본관, 2009년 신사 분관을 세웠다. 호림박물관은 현재 국보 8점·보물 52점을 비롯해 토기·도자기·회화·전적·금속공예 등 1만5000여점을 소장한 국내 대표 사립박물관이다.

윤장섭은 생전 본지 인터뷰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소장품으로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을 꼽았다. 일본에 유출됐던 귀한 문화유산을 되찾아 왔다는 데 벅찬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아흔 넘어서까지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했다. 남대문시장에서 구두를 사 신고 이면지를 잘라 묶어 메모지로 썼다. 그렇게 모은 돈을 유물 구입에 썼다. 소장자가 값을 부르면 절대 깎지 않았다. 1974년 '청화백자매죽문호' 구입에 당시 서울 도심 빌딩 한 채 가격인 4000만원을 지불했다. 그는 평소 "좋은 물건일수록 먼저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2001년 국민훈장목련장, 2009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박정윤 여사와 아들 재동(성보화학 부회장), 재륜(서울대 교수), 경립(유화증권 회장), 며느리 오윤선(호림박물관장)씨가 있다. 빈소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010-2230


기고자 : 허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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