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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6개월 된 회사원 허승완(33)씨는 경기도 광명 22평 아파트에서 산다. 방 셋을 침실과 옷방, 취미방으로 꾸몄다. 취미방은 영화에서 본 '남자의 방'처럼 푸른색 페인트로 벽을 칠했고 총각 시절부터 수집한 레고블록과 시계, 술병, 책을 가득 진열해놨다.

그는 "나만의 취미방을 갖는 것이 오랜 꿈이라 아내를 설득했다"며 "대신 아내를 위한 베란다 정원을 꾸며줬다"고 했다. 퇴근 후 아내와 식사를 함께한 뒤 한 시간쯤 이 방에서 개인 시간을 갖는다. 허씨가 "좋아하는 물건을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자 아내 정지은(28)씨도 "각자 생산적인 시간을 적절히 갖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육아와 살림뿐 아니라 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집안 인테리어에도 적극 참여하는 남성이 늘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 운영하는 셀프 인테리어 블로그나 남성을 위한 인테리어 책도 많아졌다. 아내와 아이들이 주인공이나 다름없던 집안에 남성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서양에선 이미 10여 년 전부터 '맨케이브(mancave·남자의 동굴)'라 불리며 주목받아온 현상이다.

싱글 남성뿐 아니라 젊은 남편·아빠들이 간섭받지 않고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꿈의 공간'을 집 안에 실현시키는 것. 쌍둥이 아빠 박충환(39)씨는 최근 창고처럼 쓰던 아파트 작은방을 자기 방으로 만들어 무선조종 자동차를 진열했다. 평소엔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근다. "아이들이 커서 자기 방이 필요해질 때까지만 쓰겠다고 아내와 약속했다"고 한다.

초등학생 아들·딸의 아빠인 최종규(45)씨도 경기 고양시 아파트에 살다 근처에 새로 집을 지으면서 현관문 옆 좁은 방을 취미방으로 만들었다. 다른 건 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맡겼지만 기타와 드럼을 연주할 수 있는 방 한 칸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삶의 활력이자 휴식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맨케이브'라는 말은 1992년 출간돼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다. 저자 존 그레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남성은 조용히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 생각에 집중하며 틀어박혀 지내는 반면, 여성은 다른 이들과 속 시원히 얘기하고 싶어 한다"고 썼다. 우리나라도 전통적으로 남성의 공간인 사랑방과 서재가 있었으나 집 크기를 줄이면서 사라지는 추세였다.

모노컴플렉스 스튜디오의 조장원 디자이너는 "요즘 집 안에 다시 생겨나는 취미방은 남성들 취향과 선택이 예전보다 더욱 존중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방영을 시작한 케이블채널 XTM의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도 예상 밖의 인기를 끌어 최근 시즌2까지 제작됐다. 아내가 외출한 사이 집안에 남편만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예능프로그램에 게임방, 당구장, 맥주펍 등 다양한 취향을 반영해달라는 의뢰가 빗발쳤다.

미국의 사회학자 폴라 에이머는 '맨케이브'를 "남성성의 마지막 보루"라고 해석한다. 그는 "직장여성이 늘면서 남성도 집안일을 돌보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자기만의 공간이 더욱 필요해졌다"며 "남성은 '여기가 내 공간'이라고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여성의 공간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했다. 최성애 HD행복연구소장은 "남성은 자신의 공간에 진열한 물건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스스로 성취한 결과를 확증·과시하면서 만족을 얻는다"며 "스트레스 받은 남성이 혼자 숨 고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부부·가족관계에 도움될 수 있다"고 했다.

기고자 : 최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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