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채식주의자'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은 한국 문학이 이루어낸 대단한 성과다. 소설가 한강이 노벨상 수상 작가인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 중국의 대표 작가 옌렌커, 이탈리아의 인기 작가 엘레나 페란테 등을 누르고 수상자로 선정됐기에 더욱 자랑스럽다.

한강의 이번 수상 덕분에 한국 문학은 드디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고, 노벨 문학상에도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 이제 해외 독자들이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외국 출판사들도 한국 문학을 적극적으로 출간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이야 노벨상에 초연할 수도 있겠지만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받는 것은 국가의 위상과 관련된 사안이란 점에서 우리 국민은 노벨 문학상을 원한다. 한강의 이번 수상을 계기로 그 염원은 이제 구체적인 가능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눈부신 경제 발전 국가로, 최첨단 테크놀로지 국가로, 한류의 본원지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이번에 맨부커상 수상에 성공함으로써 명실공히 문화 강국의 이미지도 굳혔다. 문학 한류를 통해 이제는 대중문화뿐 아니라 우리의 고급 문화도 해외에 알려지게 돼 우리의 국책인 문화 융성이 해외에서도 큰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테러로 인해 세계의 관심사가 된 '타자에 대한 폭력',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탁월한 시적(詩的) 감수성과 세련된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가부장적 사회의 폭력, 선(善)의 가면을 쓴 은밀한 폭력, 대의를 내세운 제도적 폭력을 차례로 고발하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이해 부족이 폭력을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주인공의 아버지는 채식주의자인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 옳다는 독선에 빠져 딸에게 육식을 강요한다. 그러한 폭력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타자를 죽이는 테러리스트들과 정치 이데올로기에 경도돼 이념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는 급진주의자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채식주의자'가 영예의 수상작이 된 데에는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의 공도 컸다. 데버러는 문학적 감수성, 탁월한 문장력, 그리고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통달한 이상적인 번역가다. 한강의 수상은 우리 문학 세계화에 좋은 번역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뉴스는 미국에서도 크게 다루어지고 있다. 헬렌 신 미국 밴더빌트대 교수는 '채식주의자'가 지금 미국 영문과에서도 대단한 인기라고 전했다. 교포 문학이 아닌 한국 문학에 미국 문학 교수들과 학생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는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반열에 들어섰음을 의미하는 현상이어서 고무적이다.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 KL 매니지먼트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번역원은 그동안 KL 매니지먼트 소속 작가 15명의 작품 132편을 번역해 주었고, KL 매니지먼트는 그 원고로 해외 출판사를 섭외했다. 그러나 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은 주로 해외 출판사를 직접 섭외해 한국 문학을 출간한다. 이번 수상으로 이 세 기관의 노력이 드디어 커다란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