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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에서 통산 800블로킹을 달성한 '블로킹의 여왕' 양효진(27)은 국가대표로 해외에만 나가면 '시녀'가 된다. 대표팀 주장이자 '센 언니' 김연경(28)과 함께 방을 쓰는 탓이다. 늘 같은 방을 쓰는 둘을 향해 동료 선수들은 김연경을 방장(房長), 양효진을 방졸(房卒)이라 부른다.

양효진은 '화장실을 쓰고 나면 물기 하나, 머리카락 한 올 남지 않아야 한다'는 김연경의 규칙을 군말 없이 잘 따르는 착한 후배다. 겉보기엔 수직적인 선후배 관계 같지만 사실 둘은 대표팀에서 가장 절친한 사이로 꼽힌다. 김연경은 순한 성격의 양효진을 친동생처럼 대하고, 양효진은 시원시원한 성격의 김연경을 롤모델로 삼으며 잘 따라 코트 밖에서도 자주 붙어 다닌다.

두 선수의 우정이 코트 위에서도 환하게 피었다. 방장과 방졸이 37점을 합작하며 리우올림픽 본선행을 코앞에 남겨놨다. 김연경에게 쏠린 공격 부담을 양효진이 자신의 주특기인 블로킹으로 덜어준 덕분이다. 둘의 활약에 힘입은 한국은 20일 열린 세계 예선전(일본 도쿄 메트로폴리탄체육관) 5차전에서 페루를 3대1(18―25 25―22 25―14 25―21)로 꺾으며 4연승을 달렸다.

전문가들은 경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낙승을 전망했다. 한국은 페루와 상대 전적이 21승11패로 우세한 데다 세계 랭킹도 9위로 페루(21위)보다 높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1세트에 한국은 수비가 흔들렸다. 일본전에서 서브 에이스만 5개를 쏟아낸 라이트 김희진도 잘 보이지 않았다.

1세트를 내주며 가라앉은 한국 팀의 분위기를 반전시킨 주인공은 방졸 양효진이었다. 양효진은 2세트에서만 블로킹 4개를 성공하며 상대의 공격을 진압했다. 김연경과 다른 날개 공격수들이 주춤한 사이 양효진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다. 이정철 감독은 2세트 중반까지 부진했던 김희진을 빼고 황연주를 투입하며 오른쪽 날개 공격수를 보강했다.

양효진과 동갑내기 친구이자 라이벌 센터인 배유나도 가만있지 않았다. 3세트 초에 투입된 배유나는 세 번 연속 블로킹으로 점수를 올렸다. 번번이 한국의 벽에 공격이 막힌 페루는 서서히 무너졌다. 2세트까지 한 개도 나오지 않던 한국 팀의 주 무기인 서브 에이스를 처음 성공시킨 것도 배유나였다. 양효진은 이날 블로킹 8개를 포함해 18점을 올렸다. 19 득점한 김연경에 이어 팀에서 둘째로 많은 득점을 올린 것이다. 박정아도 13점을 기록했다. 총 16개의 블로킹을 앞세우며 페루의 공세를 차단한 한국은 2~4세트를 내리 따내며 1승을 추가했다. 페루의 주포 안젤라 레이바는 홀로 23점을 몰아쳤지만 팀 승리를 이끌진 못했다.

한국은 21일 오전 10시 태국전이나 22일 오전 10시 도미니카공화국전에서 1승만 더 올리면 자력으로 본선행을 확정한다. 한국은 이번 예선에서 아시아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거나 아시아 1위 팀을 제외한 상위 3위 안에 들어야 리우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다. 기고자 : 김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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