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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앨프리드 번바움이라는 수줍어하는 인상의 청년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찾아갔습니다. 프러포즈였죠. 작품이 좋아서 번역하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앨프리드의 번역 원고가 몇 개 쌓이면서 하루키는 미국 유력지 '뉴요커'에 진출합니다. '양을 둘러싼 모험'과 '댄스 댄스 댄스'도 그의 번역이었죠. 하루키는 "앨프리드는 대단히 유능하고 의욕 넘치는 번역자였다"면서 "만일 그가 내게로 찾아오지 않았다면 내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다는 생각은 그 시점에서는 아마 못 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맨 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의 일등 공신(功臣), 데버러 스미스(29)는 어떨까요. 케임브리지대 영문과 출신, 한국어 배운 지 겨우 7년, 한강 문학에 대한 매혹 등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시상식 참석을 위해 런던으로 떠나기 직전의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언제 처음 만났냐고요. 놀랍게도 '채식주의자' 번역을 모두 완성한 다음이었다는군요. 한국이 주빈국이던 2014년의 런던도서전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답니다. 물론 그전에 여러 차례 메일을 주고받으며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죠. 한강의 후속작인 '소년이 온다', 신작 '흰'의 번역 역시 데버러가 맡았습니다.

2015년 여름 한강은 영국문화원이 후원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영국 노리치에서 두 달을 머물렀습니다. 작가는 "그때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자신에 관한 질문에는 엄격했지만 번역자에 대한 칭찬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깊고, 문학을 대하는 태도가 그럴 수 없이 진지한 사람"이라면서요. 데버러 스미스는 최근에 틸티드 엑시스라는 출판사를 차렸습니다. 한강은 "백인, 중산층, 남성이라는 영국 문학의 주류를 흔들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아시아 여성들의 소설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전하더군요.유능하고 야심 많은 번역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였달까요.

한국 문학의 세계화와 관련, 기관이나 단체가 꼭 유념했으면 하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기고자 : 어수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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