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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모(25)씨는 지난 15일 극장에서 영화 '곡성'을 보는 내내 기분이 언짢았다. 의문의 살인 사건을 다룬 이 미스터리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마지막 순간인데, 김씨는 영화를 보기 전에 미리 결론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김씨가 의도적으로 이 영화의 결론을 알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다. 김씨는 영화 표를 예매한 후 일부러 영화 예고편도 보지 않을 정도로 이 영화 관람을 고대했다. 그런데 영화 보기 전날 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한 게 문제였다. 커뮤니티 게시판 글 목록에 '곡성 범인은 ○○○'이라는 제목이 떡하니 올라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먼저 본 관객이 올린 스포일러(spoiler·영화 등의 결말이나 반전을 공개하는 것)였다. 김씨는 "대체 무슨 심보로 남의 영화 감상을 망치는지 화가 난다"고 말했다.

영화 보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스포일러 때문에 영화 팬들이 분노하고 있다. 스포일러는 영화 제작진이 만든 예고편(trailer)과 다르다. 예고편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흥미진진한 내용을 꼭꼭 숨겨둔다. 반면 스포일러에는 이런 핵심 내용이 다 포함돼 있다. 관람자의 감상을 망친다(spoil)는 뜻에서 스포일러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난 11일 '곡성'이 개봉한 이후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와 게임 커뮤니티 같은 각종 사이트에는 극 중 범인을 지목하는 스포일러들이 넘쳐났다. 출연한 배우의 이마에 '범인'이라는 단어를 합성한 사진이 올라오는가 하면 남들이 보는 메신저 대화명을 '곡성 범인은 ○○○'으로 설정해 골탕을 먹이는 식이다. 한 네티즌은 "인스타그램에서 (스포일러에) 한 번 당하고, 카톡에서 두 번 당하고, 아프리카TV에서도 당했다. 극장 가서 보려다가 마음 접었다"고 했다.

영화 곡성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20일까지 악성 스포일러들을 캡처한 100여건의 제보와 함께 "대한민국 영화 발전을 위해 일벌백계해 달라" "IP 주소 추적해서 처벌해달라"는 요청이 접수됐다.

곡성 개봉 이전의 다른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에도 스포일러는 있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도 사전 촬영된 영상 일부가 사전 유출돼 시청자들의 불만을 샀다. 서바이벌 예능 프로인 '복면 가왕'은 스포일러 때문에 몸살을 앓은 뒤 방청객들에게 '녹화장에서 본 내용을 방송 전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과거엔 감상평이나 후기(後記)를 쓸 때 아직 이 프로그램을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제목에 '스포(일러) 포함'이라는 경고 문구를 넣어주는 것이 불문율로 통했다. 반면 이번 곡성 스포일러들은 이런 경고 문구가 없는 데다 영화와 관련없는 사이트까지 마구잡이로 게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악성(惡性)' 스포일러로 불린다. 영화업계 관계자는 "곡성이 개봉 8일 만에 관객 3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주목을 받으면서 네티즌 장난의 타깃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영화 팬은 스포일러를 방치하는 영화 제작사들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영화 제작사들이 홍보 효과를 노리고 스포일러에 대해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업계가 악성 스포일러에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다.

국내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개봉한 작품의 내용을 올리는 것은 불법이 아닌 데다 민사상으로도 스포일러로 인한 피해를 입증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박지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대형 영화사들도 스포일러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자발적으로 스포일러를 자제하는 윤리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고자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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