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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이 팔 수 있는 건 다 팔 모양이다. 장보고함 등 국산 잠수함과 이지스 구축함 율곡이이함을 건조한 방산(防産) 분야를 떼어내고, 루마니아 망갈리아조선소 등 해외 자회사 매각에 나선다고 한다. 대대적인 감원 바람도 예고했다. 5조원 넘는 손실을 입은 회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뻔하다. 돈이 되는 건 뭐든지 팔아서 현찰을 만들고, 인건비와 경비를 줄여야 한다. 이런 지경이 되면 주 채권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허리띠를 더 졸라매라고 채근하고, 대주주는 채권단의 말이라면 죽는시늉까지 해야 할 처지다. 채권단에 경영권을 넘긴다는 각서를 제출하는 일도 다반사다. 채권단은 갑(甲) 중의 갑이고,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대주주와 경영진은 을(乙) 중의 을이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은 이런 상식을 벗어난다. 아주 이상한 점이 있다.

부실 경영에 책임을 져야 할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책임지기는커녕 주 채권은행 노릇을 하면서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49.7%를 갖고 있는 1대 주주다. 회사를 이 지경까지 망가뜨렸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대주주인데 "자구안을 제출하라" "자구 노력이 부족하니 보완하라"고 독촉하는 주 채권은행 역할을 하고 있다. '1인 2역'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한술 더 떠서 얼마 전에는 대우조선해양보다 재무 건전성이 나은 삼성중공업으로부터 자구안을 제출받고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퇴짜를 놓기도 했다. 같은 업종에서 최악의 경영 성적표를 받은 대주주가 멀쩡한 다른 회사에 구조조정 강도를 높이라고 요구하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중이다.

쓴웃음을 자아내는 블랙 코미디 같기도 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공포 영화 같기도 하다. 구경꾼들은 세상에 보기 드문 이상한 일이라고 수군거리는데, 정작 당사자인 산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주주였던 기억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은 사람들의 말이다. "산은 주차장에 대우조선해양이라는 차가 주차해 있다고 해서 그 차가 산은 것이냐. 우리는 차 열쇠를 구경도 해 본 적 없다."

산은은 지난 2000년 대우그룹 워크아웃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을 자회사로 떠안게 됐고 16년간 대주주였지만 실제로는 경영 책임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한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산은은 한 번도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정해 본 적이 없다. 사실상 청와대나 정부에서 '낙점'을 했는데 어쩌겠느냐"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는 청와대나 정부의 실세들이었다는 얘기다. 이런 기형적 구조를 만들어 놨으니 대우조선해양이 5조원대의 기록적인 손실을 기록한 것은 뿌린 대로 거둔 것이다.

그렇다고 산은은 책임질 일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대주주로서의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면 주 채권은행으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했었는지 따져볼 일이 남았다. 산은은 5조원대의 손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대주주 역할은 힘이 부쳐 못했다고 치더라도 주 채권은행 역할도 낙제점이다. 침몰 위기라는 조선업보다 국책은행 구조조정이 더 급해 보인다. 제대로 망가져 있다.
기고자 : 이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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