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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조금 먼저 만난 것뿐이지요. 전 지금 이렇게라도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경기도 고양의 관중 없는 2군 야구장에서 만난 29세 야구 선수는 마치 세상을 달관한 것처럼 말했다. 야구 선수치고는 마른 몸.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그는 지난해 1월 대장암 2기 진단을 받고 마운드를 떠났던 NC다이노스 투수 원종현이다.

그는 24일부터 1군 선수단에 합류했다. 1군 등판이 임박했다는 얘기다. 그가 마지막으로 1군 마운드에 오른 것은 1년 7개월 전인 2014년 10월이다.

김경문 감독은 "이제 몸은 다 만들었다"며 "6월부터 1군 경기에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원종현은 지난달부터 2군 경기에 등판해 공 20~30개씩을 던졌다. 최고 구속도 시속 151㎞까지 나왔다.

아직 완치 판정을 받은 건 아니다. 구운 음식은 입에도 안 댄다. 그는 고기 대신 채소와 요구르트를 먹는 '채식남'이 됐다. 암이 재발한다며 복귀를 말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원종현은 "이 나이에 집에만 있으면 스트레스 받아서 병이 더 도질 것"이라며 "나는 살기 위해서라도 공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원종현은 군산상고 당시 동급생인 차우찬(현 삼성 라이온즈)과 에이스를 다퉜다. 2006년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을 때만 해도 촉망받던 투수였다. 하지만 프로에서 제구력 난조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찾아왔다.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도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소위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 빠진 것이다. 제구력으로 고생한 메이저리그 투수의 이름을 딴 이 증상은 심리적인 이유 탓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해지면 공포 때문에 공을 잡지도 못한다. "그땐 희망이 안 보였어요. 관중 텅 빈 야구장에서 공을 던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통 사람들은 몰라요. 더 괴로운 건 내 몸이 그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는 사실이에요."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프로야구 최저 연봉(2000여만원)을 받으며 월세방에 혼자 살았다. 밤엔 라면이나 햄버거로 배를 채웠다. 팀이 삼겹살이나 갈비로 회식이라도 하는 날엔 고기만 8~10인분을 해치웠다.

2010년 LG에서 방출된 뒤 2012년 새로 창단한 NC에 입단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투구 폼을 오버핸드에서 지금의 사이드암으로 바꿨다. 허리를 비틀어 공에 힘을 실으면서 구속은 155㎞까지 올랐다. 2014년 그는 NC 불펜의 '필승조'로 활약했고 연봉도 8000만원으로 뛰었다. 8년간의 고달픈 2군 생활이 끝나고 막 꽃을 피우던 순간이었다. 그러던 작년 1월 대장암 2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원종현은 "그땐 정말 억울해 벽을 치며 울었다"고 했다.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 매일 두려웠지요. 하지만 12번의 항암치료를 받으며 생각 자체가 바뀌었어요. 그렇게 잡기 어려웠던 제구도 잘되고 있어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던 거지요." 어린 나이에 죽음의 문턱을 넘으면서 마음의 짐도 날린 것이다.

지난해 팀 동료들은 진단 소식을 듣고 그의 강속구를 상징하는 숫자 '155'를 모자에 새기기도 했다. NC는 작년 10월 플레이오프 1차전 때 시구자로 그를 초대했다.

그는 요즘 매일 야구 중계를 보며 1군 마운드에 서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너무 오랜만에 마운드에 오르는 거라서, 환호성에 흥분해 오버할까 봐… 그게 걱정입니다."

기고자 : 최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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