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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흔다섯이 된 이수욱씨는 벌써 반(半)세기가 지난 청룡봉사상 초대(初代) 수상 순간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씨는 1967년 제1회 청룡봉사상에서 충상(忠賞)을 받았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엄민영 내무부 장관이 직접 상장을 주고 어깨를 두드려줬지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올해 50주년을 맞는 청룡봉사상 시상식을 앞두고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자택에서 만난 이씨는 "벌써 50년이나 흘렀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내무부 치안국 경위였던 이씨는 경찰 내에서 '간첩 잡는 호랑이'로 통했다. 1967년까지 이씨는 17건의 간첩 사건을 수사해 60명이 넘는 간첩을 잡았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인 7월에는 간첩 22명을 동시에 검거하고 20만달러를 압수하는 성과를 냈다.

이씨가 경찰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인 1946년 봄, 25세 때였다. 그는 "원래 형사가 되고 싶었다"며 "매일같이 형사계에 보내 달라고 조르던 나를 상관들이 치안국 대공분실로 보내버렸다"고 했다. 그 후 이씨는 1982년 12월 총경으로 퇴직하기까지 30여 년을 대공(對共) 분야에서 근무했다.

이씨는 "내가 겪은 간첩만 수백 명"이라며 "그중에 허위 진술을 하는 경우, 자살하는 경우 등을 숱하게 봤다"고 했다. 그는 진술을 거부하던 간첩들로부터 자수를 이끌어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개했다.

"나는 고문을 동원해 신문하는 방법을 싫어했어요. 대신 신문하다 말고 조사실에서 불고기를 구웠지요.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퍼지면 간첩들은 남한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일단 마음을 열어놓고 자수를 시켰지요."

1960~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엔 독재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간첩 수사에 거부감을 갖는 국민도 많았다고 한다. 이씨는 한 시골 마을에서 간첩의 은신처를 급습했던 일을 떠올렸다. "시골에 살던 청년을 체포하자 온 마을이 술렁거렸습니다. 하지만 그 집 부엌 밑의 땅을 파자 권총과 달러가 한가득 나왔어요. 그제서야 동네 사람들이 이 청년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보통 간첩 하면 스파이 영화에서 보듯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체포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1950년대엔 어처구니없이 체포된 간첩도 많았다고 한다.

이씨는 "1953년 휴전 직후 북한의 금강정치학원에서 간첩 교육을 받은 남로당원들이 휴전선 기찻길로 줄줄이 걸어 내려오다 한꺼번에 붙잡혔다"면서 "제대로 간첩 교육이 안 돼 있던 초창기의 일"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다른 청룡봉사상 수상자와 함께 봉사단체인 '청룡봉사회'를 결성했다. "경찰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상까지 받으니 민망했어요. 그래서 역대 수상자들을 모아 '청룡봉사회'를 꾸렸죠. 회원들은 '너무 과분한 상을 받았다'는 생각 때문에 평생 음지에서 이웃을 돕겠다고 결심한 것이죠."

인터뷰를 마치며 '간첩 잡는 비법'을 하나만 얘기해 달라고 했다. 백발노인(老人)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애국심을 가지고 조직에 헌신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36년 경찰 생활을 했습니다. 퇴직했어도 한번 몸담은 조직의 기밀을 누설할 수는 없습니다." 은퇴한 지 30년이 지난 노(老)경찰의 마음만은 여전히 현직이었다.

기고자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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