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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명 만화 '맨발의 겐'을 쓴 나카자와 게이지(1939~2012)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했다. 만화는 자신의 체험을 옮긴 것이다.

원폭이 떨어진 날 모든 것이 바뀐다. 주인공 겐의 아버지와 누나·동생은 무너진 집 더미에 깔려 타 죽는다. 피폭 당시 살아남았던 어머니와 어머니 배 속에 있던 동생도 훗날 모두 죽는다. 그러나 겐은 삶을 포기하거나 참상의 원인을 미국에 돌리지 않는다. 대신 침략 전쟁을 반대하다 군국주의자들에게 '비(非)국민'이란 멸시를 당했던 아버지 뜻을 받들고, 전쟁의 주범인 일본 군국주의와 천황제를 맹렬히 비판한다. 당시 많은 조선인 원폭 피해자가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며 일본의 외국인 차별도 꾸짖는다. 원폭 피해의 상처와 고난을 반전·반핵·평화·평등에 대한 갈망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 작품에 '위대하다'는 평가가 따라다니는 이유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모진 학대를 당했던 피해자 루이 잠페리니(1917~2014)도 전쟁의 상처를 인류애로 승화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유엔 난민 친선 대사이자 할리우드 배우인 앤젤리나 졸리가 감독한 할리우드 영화 '언브로큰(Unbroken·2015)'의 실제 주인공이다. 올림픽 육상 유망주였던 미국 청년 잠페리니는 태평양전쟁에 폭격기 승무원으로 참전했다가 일본군 포로가 됐다. 일본군에 붙잡힌 2만2000명의 미군 포로 중 8000명이 숨졌을 만큼 일본군은 잔악했다.

잠페리니는 특히 와타나베라는 일본군 교도관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일본 패전 후 미국에 돌아온 잠페리니는 처음엔 와타나베를 죽이는 꿈도 꿨고 복수할 생각도 했다. 그러나 결국 용서하고 1950년 도쿄를 찾아 옛 교도관들을 만나 그들을 오히려 위로했다. 이후 잠페리니는 미국에서 불우 소년을 위한 캠프를 설립해 자신의 삶을 들려주며 소년들 상처를 어루만졌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는 성화 봉송을 위해 81세 나이에 일본을 찾았다. 그는 나가노 거리를 웃으면서 달렸다. 젊은 일본 시민들도 그를 반겼다. 과거의 상처가 인류애와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후 그의 이름 앞에도 '위대한(great)'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처음 피폭지인 히로시마를 방문해 연설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보는 아이들의 첫 웃음, 주방 식탁 너머로 느껴지는 아내의 부드러운 손길, 부모님과의 따뜻한 포옹, 그런 소중한 순간들이 71년 전 이곳에도 있었을 것"이라며 "전쟁에서 숨진 모든 무고한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노구의 히로시마 피폭자 대표를 꼭 껴안았다. 피폭자 대표는 그에게 밝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를 건넸다. 이 장면이 한반도에서도 재연돼 아베 총리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날 수는 없을까. 위로하고 용서함으로써 한·일 양국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장면이 히로시마의 오바마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기고자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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