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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 엄지손가락 부위에 테이핑을 하고 나온 박인비(28)는 마음먹은 대로 되는 샷이 거의 없었다. 후반 들어선 한 홀씩 마쳐 나가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샷을 하고 나면 자꾸 왼손을 털었다. 그는 "라운드를 마치는 게 고문받는 것 같았다"고 했다.

왼손 엄지손가락 인대 부상이 메이저대회 3연속 우승, 커리어 그랜드슬램 등 눈부신 기록 행진을 벌여온 골프 여제를 삼킨 듯했다.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던 리우올림픽 출전에도 비상이 걸렸다.

27일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의 트래비스 포인트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볼빅 챔피언십 1라운드. 박인비는 2007년 LPGA 투어 데뷔 이후 최악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버디 3개, 보기 8개, 더블보기 1개, 퀸튜플 보기 1개로 12오버파 84타였다. 올 시즌 개막전인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 1라운드 80타 이후 시즌 두 번째 80대 타수다. 이전까진 2009년 웨그먼스 LPGA 최종 라운드 9오버파 81타가 가장 부진한 스코어였다.

이날 캐디는 남편이자 스윙 코치인 남기협 프로가 맡았다. 10년째 호흡을 맞춰 온 캐디 브래드 비처(호주)가 복통을 호소해서다. 남편이 캐디백을 멘 것은 2012년 롯데챔피언십 이후 4년 만이다. 박인비는 "가장 안 되는 날 짐을 넘겨준 것 같아서 남편에게 미안했다"고 했다.

박인비는 후반 들어 손가락 통증이 심해지자 극심한 난조에 빠졌다. 10번홀(파4)에서는 기준 타수보다 5타를 더 치는 퀸튜플 보기를 했다. 드라이버로 친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려 OB(아웃오브바운즈)가 됐고, 다시 3번 우드로 티샷한 공도 OB가 났다. 결국 7온 2퍼트로 홀아웃했다. 이후엔 3번 우드로 공을 살짝 갖다 대듯 티샷하는 등 더 큰 부상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박인비는 라운드 후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머리 감을 때도 손이 아프고 백스윙 톱에서 다운스윙할 때 엄지가 눌린다"며 "임팩트 후 릴리스가 잘 안 돼 스윙이 커질수록 고통이 크다"고 했다.

박인비는 지난 4월 롯데 챔피언십을 마치고 왼손 엄지손가락 통증으로 한 달간 휴식했지만 지난주 킹스밀 챔피언십에서도 2라운드 도중 기권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인비가 라운드를 마친 건 다음 달 9일 개막하는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명예의 전당 가입 조건을 채우기 위해서다. 지난해 포인트를 모두 채운 박인비는 올해 10개 대회에만 출전하면 '투어 생활 10년' 조건을 충족한다. 1라운드만 마치면 기권하더라도 출전 대회로 인정받는다. 위민스 PGA 챔피언십은 박인비의 올 시즌 10번째 대회가 된다.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위민스 PGA 챔피언십은 박인비가 사상 처음 4연패에 도전하는 대회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 대회 1라운드를 마치고 대회장에서 명예의 전당 헌액식도 치른다. 박인비는 "LPGA 투어와 가족, 스승, 지인들이 성대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어 아픔을 참고 지난주와 이번 주 대회를 뛰었다"고 했다.

1라운드를 마치고 기권한 박인비는 라스베이거스의 집에서 휴식할 예정이다. 만일 세계 랭킹 2위 박인비의 회복이 늦어져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게 되면 차순위 선수들이 출전하게 된다. 올림픽은 국가별로 2명까지 출전하지만 15위 이내에 4명 이상이 진입하면 그 국가는 4명까지 나갈 수 있다. 대한골프협회 관계자는 "올림픽 엔트리 확정(7월 11일)까지 시간이 있어 지금 뭐라 말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표] 여자 골프 세계 랭킹 기고자 : 민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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