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중국계 은행 서울 지점의 30대 중국인 부장이 최근 국내 은행 차장급 직원을 만났다가 "몇 살이냐? 이렇게 어린데 어떻게 부장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 4~5년간 근무하면서 나이 때문에 불쾌한 일을 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지나치게 엄격한 위계질서가 향후 한국의 성장을 가로막을 것이다"고 말했다. 중국 안방보험이 작년 9월 인수한 동양자산운용의 팡젠(41) 대표는 "중국에선 실력만 있다면 젊은 사람이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 신용카드사 유니온페이 인터내셔널 한국 지사 성보미 대표는 30대 후반의 여성이다.

제조업에서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한 중국이 금융에서도 위협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막대한 자본으로 해외 개발 및 인수·합병(M&A) 시장을 장악하고, 젊은 피를 앞세워 핀테크(Fintech)라는 '새 판'을 밀어붙이고 있다.

젊은 CEO는 단적인 예일 뿐이다. 자산 125조원의 안방보험이 작년 동양생명에 이어 지난달 한국알리안츠생명을 인수했다. 핑안보험·안방보험·푸싱그룹·중신그룹 등은 지난 2월 금융위원회를 방문해 한국 금융사 인수와 관련된 허가 사항 등을 조사해갔다. 이들은 한국ING생명에도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015년 말 자본 기준 세계 1~2위는 중국 공상은행(2486억달러)과 건설은행(2021억달러)이 차지했다. 3위 미국 JP모건(1866억달러)과 격차가 컸다. 공상은행 한 곳의 순이익(45조원·2013년)은 우리나라 은행 전체(4조5000억원)의 10배나 된다. 중국 금융사들은 작년 1181억달러(약 142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중국의 해외 M&A 등에 올라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핀테크에선 이미 중국이 한국을 몇 년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올해 한국에서 뜨거운 관심을 모으는 로보어드바이저는 중국에선 이미 4년 전 증시에 상장됐다. 전자상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 규모는 작년 8조위안(1427조원)에서 2018년엔 18조위안(3211조원)이 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IMD(국제경영개발원)가 평가한 금융 경쟁력 순위는 2000년 한국 29위, 중국 37위에서 2014년 한국 29위, 중국 27위로 역전됐다.

젊은 혈기가 만능 열쇠는 아니다. 우리나라 은행 CEO들을 40대로 교체하자는 얘기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이 경직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날 필요는 있다. 국책은행을 비롯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이 추진되자 금융권 노조들은 파업을 불사하며 저항 중이다. 규제의 울타리 안에서 때가 되면 승진하고 연봉이 올라가던 시절을 떠나보내고 싶진 않을 것이다. 이제 그런 관성들과 이별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이젠 삼성·LG 휴대폰보다 화웨이·샤오미 제품이 더 낫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고정관념을 깨는 금융 개혁에 미적거릴수록 한국 금융이 그러한 저평가를 받는 시기만 앞당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