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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미 보스턴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강당. 이 학교 에이미 커디(44) 교수가 동료 교직원과 재학생 200여 명 앞에서 실패담을 적나라하게 털어놓자 강연 초반부터 좌중은 웃음바다가 됐다. 그는 "당시 교수님들이 싸늘한 표정으로 나가버린 뒤 혼자서 엘리베이터 벽에 기댄 채 쪼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2분이 흡사 2년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날 강연은 하버드대 경영대가 교수들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교직원과 재학생을 대상으로 여는 수시 특강 가운데 하나였다. 보통은 40~50명 정도가 참석하지만 이날은 200여 명이 몰려들어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커디는 2012년 지식 공유 콘퍼런스인 테드(TED)에서 '몸짓 언어(body language)가 사람을 결정한다'는 발표로 3300만회의 조회 수를 기록한 '하버드대의 스타 교수'다. TED 사상 둘째로 많은 조회 수다.
두 발을 당당하게 벌린 뒤 허리에 두 손을 얹는 이른바 '원더우먼 자세'가 자신감을 높여주고 좋은 성과를 낳는다는 그의 책 '프레즌스'(알에이치코리아)는 지난해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세계 27개국에도 번역됐다. 커디는 전 세계에 '행복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열세 살 아들이 학교 축구팀에서 수비수로 뛰는데 페널티킥을 차기 전에 '원더우먼 자세'로 골대를 바라보더니 결국 골을 넣었다. 엄마 책을 읽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2시간 내내 쉼 없이 계속된 그의 '열강(熱講)'에 객석에선 웃음꽃이 가시질 않았다.
지구촌에 '원더우먼 열풍'이 번지고 있는 건, 실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적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연구실에서 만난 커디는 "취업 면접장에 들어가거나 회사에서 중요한 발표를 하기 전에도 잔뜩 웅크린 채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초조해하기보다는 차라리 계단과 화장실에서 잠시라도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온몸을 최대한 펴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마저 힘들면 머릿속으로라도 수퍼맨이나 원더우먼이 된 자신을 상상하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그는 프린스턴대 박사와 하버드대 교수라는 화려한 배경과 미모 때문에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여주인공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커디 교수는 자기 반에서 대학 진학 비율이 3분의 1을 넘지 않는 펜실베이니아주(州) 농촌 지역에서 고교 시절을 보냈다. 콜로라도대에 진학한 뒤에도 식당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서빙을 하거나 영화관에서 팝콘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었다.
커디는 대학 2학년 때 환경 관련 회의에 참가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량이 뒤집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운동·언어 장애를 수반하는 다발성 신경 손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두 차례 휴학과 복학을 거듭한 끝에 8년 만에야 학부 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사고 이후에도 불안과 공포 때문에 한동안 자동차를 타면 쥐며느리처럼 온몸을 웅크렸다"고 말했다. 행동과 자세에 대한 남다른 관심도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커디 교수는 "당시엔 낙제하지 않고 무사히 한 주, 한 주를 보낼 수 있기만을 바랐다. 하버드대 교수가 되리라고는 상상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나 거침없고 당당한 자세를 강조하지만, 동양 문화권에서는 자칫 오만불손한 행동으로 비치기 쉽다. 존댓말과 바른 몸가짐을 중시하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커디 교수는 "신체 언어의 표준이나 규범은 문화권마다 다르게 마련"이라며 "상대에게 바짝 다가가거나 지나치게 큰 공간을 차지하는 행동이 동양 문화권에서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화권별 신체 언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책을 펴내는 것이 다음 계획이다. 커디 교수는 "가정 폭력이나 비만, 실업 같은 위험에 노출된 약자들이 심리적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도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고자 : 김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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