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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 퇴직한 '을'은 노후를 위해 디저트 카페를 창업하기로 했다. 전 직장 동료가 프랜차이즈 본부 '갑'을 소개해 주었다. 사업 경험이 없는 을은 갑의 명성과 노하우를 믿고, 갑의 직원이 추천한 곳에 매장을 열었다. 하지만 갑의 잘못된 상권 분석과 지원 부실로 개점 초부터 경영난에 시달렸다. 투자금의 일부라도 회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면 어떻게 될까. 갑의 불공정 행위를 조사해 법 위반이 드러나면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다. 하지만 을의 피해까지 구제해주지는 않는다. 을이 손해를 배상받으려면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중소 사업자들에게 소송은 부담스럽다. 부족한 법률 지식, 변호사 비용, 최종 판결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소송 과정에서 대기업이나 가맹본부 등과 거래가 아예 중단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 '갑질'을 참아 넘기고, 소송 자체를 포기한다.

그래서 낙심한 을에게 공정위는 "공정거래조정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하라"고 권했다. 무료로, 60일 안에 조정이 종료된다고 설명했다. 을의 조정신청을 접수한 공정거래조정원은 갑이 상권 및 예상 매출을 과장해서 가맹 계약을 맺도록 유도한 정황을 확인했다. 물류 공급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매장 운영에 지장을 겪게 한 점도 드러났다. 조정원은 투자금의 일부를 보상하도록 조정안을 제시, 양측이 받아들였다.

이렇게 공정거래 조정제도를 이용하면 공정위와 법원을 거치지 않고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 인지대나 송달료도 들지 않는다. 비용 없이 빠르게 해결되는 것이다. 타인에게 공개되지 않으므로 기업 비밀 보호에도 유리하고, 거래 관계가 유지될 가능성도 높다. 소송과 달리 합의를 통한 해결에 초점을 맞춘 제도이기 때문이다. 2008년 업무를 시작한 공정거래조정원은 2015년까지 총 1만 건 넘는 분쟁을 맡아 84%를 조정 처리했다.

기업의 경쟁력은 사업 파트너, 소비자, 지역사회와의 경제 생태계 속에서 결정된다. 공정한 거래와 상생이 핵심이다. 극단적 대립은 당사자들뿐 아니라 사회에도 손실을 초래한다. 짧은 시간에, 경제적으로, 합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공정거래조정원을 활용하기 바란다.

배진철 공정거래조정원장 기고자 : 배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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