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 여행객들 사이에서 최고의 '힐링 여행지'로 떠오른 곳이 있다. 인도차이나반도에 있는 나라 라오스다. '가난하지만 평화가 깃든 그곳에서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텅 빈 시간을 보내며 잊었던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는 식의 감동 어린 여행기가 넘쳐난다.

최근 방문해보니 그곳은 과연 평화로운 나라였다. 수도 비엔티안 번화가에서조차 사람들 표정에선 바쁜 기색도, 간절한 욕망의 눈빛도 찾기 힘들었다. 새벽마다 승려들의 탁발 행렬 앞에서 음식과 생필품을 시주하는 시민들 표정은 온화하고 경건했다.

하지만 그 '평화'의 이면엔 오랜 정체와 낙후가 도사리고 있었다. 비엔티안 중심가 초등학교의 시설은 1970년대 우리나라를 보는 듯했다. 국립박물관과 국립도서관은 우리의 면(面) 단위 수준도 안 돼 보일 만큼 열악했다. 라오스는 '협찬 국가'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많은 것을 다른 나라에 의존하며 생존해 왔다.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뒤엔 미국의 원조를 받았다. 라오스 상점 대부분의 공산품은 태국산 수입품인데, 태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하도 커서 비엔티안 전역에서 바트화가 통용되고 있다. 반면 라오스 화폐인 낍(kip)은 국경을 넘으면 무용지물이다.

2000년 국공립 공연장인 국립문화회관의 건설은 중국 정부가 거액을 지원해 준 덕에 가능했고, 2012년 메콩 강 관리 사업은 한국 기업의 참여로 이뤄졌다. 비엔티안 시내의 새 버스들은 일본의 지원을 받은 것을 표시하기 위해 측면에 일장기를 그려 넣고 달렸다. 시민들은 정부 인사들의 회의 장면만 온종일 틀어 주는 재미없는 라오스 방송 대신 이웃 나라 태국과 베트남에서 송출하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을 의미하는 노자(老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은 문명의 발전 없이 무위(無爲)와 무욕(無慾)으로 이뤄지는 도가적 이상(理想) 사회다. 인구 690만 규모인 라오스는 공산 혁명 이후 지난 40여 년 동안 정체와 은둔 속에서 그와 비슷한 사회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개방의 물꼬가 터진 지금 라오스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1인당 GDP 1865달러, 기대 수명 60대 초반, 문해율 70%대 같은 숫자들은 과거의 오랜 '무욕'과 '평화'가 낳은 부작용일 뿐이다. 이제 그 정체의 대가를 고스란히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라오스의 상황은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지난 반세기 우리는 빠르게 성장해 산업·교육·의료·문화 등 각 방면에서 라오스 같은 저개발 국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반면 초고속 성장의 부작용으로 무욕 대신 온갖 욕망이 춤추는 피곤한 사회가 된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그래도 '헬조선'이나 '흙수저'를 외치면서 잠시 들른 라오스를 낙원이나 이상향쯤으로 여기는 건 우스운 일이다. 그곳에서 잠시 쉬면서 정체를 경계하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는다면 또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