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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배 속에서 딸은 거꾸로 들어서 있었다. 수술이 불가피했다. 의사가 물었다. "언제 할까요?" 택일(擇日) 앞에서는 누구나 운명론자가 되는 모양이다. 아이의 출생 날짜와 시각까지 정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떠밀려 그곳을 수소문했다.

서울 강남에서 유명하다는 점집이었다. 젊은 처녀 무당이 뱉어내듯이 말했다. "이날은 재운이 좋고 이날은 총기가 있어." 미련하게도 총기를 택했다. D데이와 시각을 세팅해 놓았지만 계획은 어그러지고 말았다.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딸은 보름이나 일찍 세상에 나왔다. 재운과도 총기와도 무관한 날이었다. 그날 이후 점집을 끊었다.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의 등장인물들도 "겁나게 용한 무당이랴~"라는 대사에 낚인 존재들이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평소엔 귓등으로 흘려보낼 말에도 뿌리째 흔들린다. '곡성'에서 경찰관 종구(곽도원)는 동네에서 자꾸 사람이 죽어나가자 "해괴한 일은 모두 외지인인 일본 남자(구니무라 준)가 나타난 다음부터 벌어졌다"는 뜬소문에 휩쓸린다. 딸 효진(김환희)이까지 괴질(怪疾) 증상을 보이자 눈이 뒤집힌다.

겁나게 용하다는 무당 일광(황정민)은 단정적으로 말한다. "고놈은 그냥 미끼를 던져분 것이고 자네 딸내미는 고것을 확 물어분 것이여." 집안에 든 귀신이 악질 중의 악질이란다. 일광은 "굿을 할 테니 부정 타는 짓은 하지 마라"고 단단히 이른다.

우리 사회는 사실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섬기지 않는다. 신(神)을 포함해 초월적인 존재를 숭배하는 습관을 잃어버렸다. 인간을 달에 보낸 과학 기술이 최첨단을 질주하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인간 바둑 최강자까지 꺾었을 정도다. 하지만 '곡성'은 우리가 내적으론 얼마나 취약한지 소름 끼치게 보여준다. 근거 없는 소문과 의심에 공포가 더해지면 '겁나게 용한 무당'이 비집고 들어올 만큼 구멍투성이인 것이다.

'곡성'을 만든 나홍진 감독은 스릴러 '추격자' '황해'에 이어 한국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내시경처럼 들여다본다. "모든 살인은 신의 발밑에서 벌어진다"고 말하는 그는 피해자 종구의 입장에 서서 불분명한 악(惡)의 근원을 파헤친다.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은 참담하고 허탈하다. 종구가 "증거 있느냐?"고 추궁하자 건강원 사장이 보여주는 업소용 냉장고는 텅 비어 있다. 일본 남자가 무서워서 더는 산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팬티만 입고 고라니를 날로 파먹는 일본 남자부터 살인 사건 현장에서 종구를 물어뜯으려고 달려드는 생존자까지 스크린에는 피가 흥건하다. 낯선 외지인에 대한 소문과 의심, 공포가 마을 전체를 잔인하게 파괴한다. 경찰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나중에는 쟁기를 머리에 꽂은 좀비까지 등장한다. 좀비가 무엇인가.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다.

이 영화에서 멀쩡한 건 자연뿐이다. 나홍진 감독은 끔찍한 사건과 사건 사이에 아름다운 풍광을 원경으로 잡아 삽입했다(전남 곡성에서 촬영했다). 질척거리는 세상사를 시치미 뚝 떼고 내려다보는 듯한 재봉술이다. 눈앞에서는 사람이 죽어나가고 종구는 점점 낭떠러지로 몰리지만 자연(自然)은 한자 그대로 '스스로 있는 존재'다. 신과 믿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초월적인 존재는 자연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곡성'은 개봉 전 SNS 연관어에서 '나홍진'이 '황정민' '곽도원'을 앞섰다. 개봉 후에는 '의심'이라는 추상적 단어가 상위권에 올랐다. "보는 내내 모든 것에 현혹되고 결국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는 영화였다" 같은 묵직한 담론이 펼쳐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관객 600만 돌파를 앞둔 '곡성'은 배우의 영화가 아니라 감독의 영화다. 사람의 심리를 읽어낸 무당은 황정민이 아니라 나홍진이다. 그는 결말까지 찝찝한 핏빛 세계를 설계해 놓고 미끼를 던졌다. 우리가 덥석 물어버린 그 미끼의 이름은 '의심'이다. 의심 때문에 추락하는 종구에게 감정이입할수록 관객도 덩달아 굴러떨어진다. "직접 보지도 않고 어떻게 확신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SNS 시대에 소문은 영화 흥행을 쥐락펴락한다. '소문 지수(指數)'라는 공식도 있다. 소문 지수=(추천 고객 수-비추천 고객 수)/전체 고객 수×100%. 관객 10명 중 6명이 추천하고 4명이 비추천한 영화라면 소문 지수는 20%가 된다. 2013~ 2014년 한국 영화 개봉작 가운데 소문 지수 1~5위는 '변호인'(67%) '7번방의 선물'(56%) '국제시장'(56%) '명량'(51%) '수상한 그녀'(50%)였다. 저마다 1000만명 안팎을 모았다. 과거처럼 점집에서 흥행 여부를 물을 게 아니다. 다 속여도 관객은 못 속인다.

기고자 : 박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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