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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의 '교토 정상회담'은 한·일 외교사에 '참사'로 기록돼 있다. 두 정상이 위안부 문제로 얼굴만 붉히다 다시 안 볼 사람들처럼 헤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막후에서 정부에 외교정책을 조언한 모 인사는 훗날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회담 직전 1000번째 위안부 수요집회에 맞춰 반일(反日) 분위기가 절정이었다. 막무가내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형국이라 '일단 연기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치밀한 준비와 전략 없이 여론만 의식한, 그저 만남이 목적인 정상회담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이번 주말 오사카 G20(주요 20국) 회의를 계기로 추진하던 한·일 정상회담이 무산됐다. 일본 측은 진작부터 "어렵다"고 통보했다는데,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5일에도 "현장에서 만나자는 일측 요청이 오면 우린 언제든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정식이 아니면 약식 회담이라도 받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만남 성사 시 '대일(對日) 외교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구색은 갖출 수 있고, 무산되더라도 그 책임을 일본에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작 회담에서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민감한 현안을 어떻게 논의할지에 관해선 별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 같은 '일단 만나고 보자'는 식의 태도는 최근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도 되풀이됐다. 오는 29~30일 트럼프 방한(訪韓) 전 어떻게든 남북회담을 성사시키고 싶은데 북한의 반응이 없자 정부 안팎에선 계속 '원포인트 깜짝 회담'이 거론됐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대놓고 "20시간만 있다면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이쯤 되니 외교가에선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트럼프 방한을 추진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트럼프 방한에 맞춰 갑작스럽게 미·북 정상회담 추진설도 나왔다.

북한과 일본이 한국과의 정상회담에 답을 주지 않는 건 만남의 실익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이들을 만나 얻어낼 것이 마땅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벤트성 '구색 맞추기용 회담'을 밀어붙이다간 명분·실리를 내주고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딘 애치슨 전 미 국무장관은 "정상회담에서 정상이 공을 놓치면 그 뒤엔 골문이 활짝 열려 있다"며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오사카에서 한·중 정상회담, 서울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경제와 안보 문제로 정면 충돌 중인 미·중이 우리에게 던질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 편에 서라"는 것이다. 정부가 대응 전략을 마련했는지, 구색 맞추기 회담에만 연연했는지 며칠 후면 성적표가 공개된다. 정상회담의 목표가 기념 촬영일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