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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서 G20 열리는데 약식회담조차 안하는 최악 상황으로
외교街 ＂양국, 정치적으로 책임 떠넘기며 공방하다 이 지경까지＂

징용 판결 등 과거사로 촉발돼 안보·경제까지 악화되고 있는 한·일(韓日) 관계 복원의 돌파구로 기대를 모았던 한·일 정상회담이 결국 무산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일 정상회담은 일본이 이번 G20 정상회의 주최국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사될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도 북핵(北核)과 대(對)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안보 협력 복원을 위해 한·일 관계 복원을 공개적으로 주문해 왔다. 그러나 한·일 정부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면서 약식회담조차 열리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외교가에서는 G20 정상회의 개최국과의 정상회담 무산 자체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일 관계가 당분간 악화일로를 걷게 되고, 한·미·일 안보 협력에까지 악영향을 줄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反日·反韓 감정에 외교 파국 오나

청와대는 25일 한·일 정상회담 무산의 책임을 일본에 돌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우리는 준비가 됐지만, 일본은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며 "우리가 제시한 해법을 일본이 아예 거절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강제징용 판결 문제에서 한·일 기업들이 참여하는 기금으로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일본이 이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이 정상회담을 우리에게 제안한 것이 없다"며 "우리가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는데 일본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G20 정상회의 주최국의 '옹졸함'을 탓한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일본이 한·일 정상회담에 적극 나서지 않은 데는 징용 판결 문제 외에 일본 내부의 정치적 배경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다음 달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집권 자민당과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강제징용 판결, 위안부 재단 해산, 초계기 갈등 등으로 악화된 반한(反韓) 분위기 속에 한·일 정상회담을 무리해 성사시킬 경우 여론의 역풍을 초래할까 봐 소극적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월 "한·일 모두 서로 지혜를 모아야 하는데, 요즘은 일본이 그런 문제를 자꾸 국내 정치에 이용하면서 문제를 증폭시켜 아쉽다"며 일본을 겨냥했었다. 아베 총리가 작년 2월 평창올림픽 때 김여정 등 북한 고위 인사들이 참석했던 리셉션에 지각 참석한 것도 청와대를 자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고의적으로 늦게 와서 행사를 방해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청와대 역시 한·일 관계에 소극적 모습을 보여왔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일본 방문 때였던 작년 5월 한·중·일 정상회의 때 1박 체류도 없이 당일 돌아와 일본의 반발을 샀다. 문 대통령과 여권(與圈)은 한·일 관계 복원을 주문할 때마다 "과거와 미래를 분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는 친일(親日) 청산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관제 민족주의"라는 비판을 들었다.

문 대통령은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사법부의 판결에 행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을 뿐, 이를 위한 행정적·정치적 해결에 나서지 않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징용 판결 문제는 삼권분립 외에도 피해자들의 입장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외교부가 한·일 기업들이 참여하는 기금을 공개 제안한 것도 한·일 관계 개선보다는 한·일 정상회담 무산을 염두에 둔 '면피용'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양국이 관계 개선 목표 없이 징용 배상과 정상회담을 두고 정치적으로 책임 떠넘기기 공방을 하다가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며 "향후 해결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강경 기류 주도

이날 한·일 정상회담을 두고 청와대와 외교부의 엇박자 논란도 있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결정된 것이 없다"고 답했지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말했다. 청와대가 대일(對日) 강경 기류를 주도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현 정부에서 청와대 참모보다 떨어지는 외교장관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말도 나왔다. 강 장관은 국회에서 "(한·일 정상회담은) 아직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다"며 "(일본 정부는) 어렵다고 했지, 공식적으로 거절한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청와대의 외교부 패싱 아니냐"는 말이 나오자 강 장관은 "외교부가 상대국을 통해 듣는 것과 청와대 측의 선(線)을 통해 듣는 것과 긴밀히 공유하고 있지만, 시차(時差)가 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기고자 : 정우상 기자 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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