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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악단이 부른 ＂일출봉에~~＂ 조성진의 베토벤이 어우러진 무대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다뉴브의 세찬 강물 소리, 처연한 물새 소리가 서울로 옮아온 듯했다. 지난 24일 밤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헝가리 지휘 거장 이반 피셔(68)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의 무대는 목소리로 지은 한 편의 추모시였다. 악기 대신 악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60여명의 단원은 사랑하는 이를 한없이 기다리고 그와의 이별에 애달파하는 마음을 한국어로 노래했다. 김민부가 노랫말을 쓰고 장일남이 곡을 붙인 우리 가곡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노래가 끝난 뒤 피셔가 10초간 묵념하듯 두 손을 멈췄다. 2000명 관객의 마음이 숙연해졌다.

BFO는 부다페스트에서 나고 자란 피셔가 1983년 고향에서 결성한 뒤 37년째 음악감독으로 피땀을 쏟아붓고 있는 명문 악단이다. 아카펠라 합창에 앞서 지휘봉과 함께 마이크를 들고 나온 피셔는 "비극적 사고가 있었던 부다페스트에서 왔다"면서 "헝가리인 모두의 마음을 다해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의) 희생자들과 유족들 슬픔에 공감한다. 그 참담함에 작은 위로나마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피셔는 BFO와 함께 대표 레퍼토리인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베토벤 교향곡 7번으로 두 시간을 채웠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악기'라는 기본을 새삼 일깨워준 무대였다. 만난 적 없는 작곡가의 내면을 파고들어 그를 한 인간으로 이해한 뒤 남의 악기로 소리와 침묵을 만들어내야 하는 지휘자는 시종 꼼꼼하고 재빠른 몸짓으로 악보에 담긴 미세한 결까지 풍부히 살려내며 '지휘의 교과서' 한 권을 완성해냈다. 무대 맨 뒷줄에 한 줄로 선 더블베이스 주자 6인은 날아갈 듯 섬세한 악단의 소리에 짙은 음영을 깔아줘 무게감을 더했다.

피아노 협주곡 4번에 합류한 조성진(25)은 특유의 연약하고 서정적인 감수성으로 딱 그 나이대의 베토벤을 선보였다. 음 하나하나가 반짝이는 유리구슬을 달고 건반 위를 내달렸다. 여리지만 영롱한 소리 형태를 빚기 위해 얼마나 공들이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연주 자체가 즐거운 듯 피아노를 치지 않을 때에도 악단의 연주에 몸을 맡기며 리듬을 탔다.

BFO가 피셔의 '악기'임을 입증한 곡은 교향곡 7번이었다. 손발 맞는 악단의 실연을 보고 있자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신체 내부의 혈관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힘차게 용솟음치는 마지막 부분에서 객석은 탄성을 쏟았고, 단원 70%가 헝가리인들인 악단이 앙코르로 들려준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 1번만으로도 아깝지 않은 표값이었다. BFO의 한국 투어는 28일까지 계속된다. 기고자 : 김경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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