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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유선 이어폰을 쓴다. 기타 앰프 제조사 마샬의 제품이다. 마샬은 영국인 짐 마셜이 1962년 설립한 회사다. 에릭 클랩턴을 비롯한 록의 전설들이 마샬 앰프를 애호하면서 유명해졌다. 거의 멸종한 록을 여전히 사랑하는 중년 독자라면 마샬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심장에서 전자 기타 독주가 울리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택시를 탔다. 80대 어르신이 운전하는 택시였다. 목적지를 말했다. MZ 세대에게 인기 있는 독립 서점이었다. 기사는 연신 "네? 네?"를 반복했다. 승강이가 이어졌다. 나는 "목적지를 스마트폰에 음성으로 불러주시면 되잖습니까"라고 말했다. 기사는 그런 기능은 써 본 적 없다는 태도로 스마트폰을 거치대에서 빼내 다소 신경질적으로 좌석에 내려놓았다.

기분이 조금 상했다. 스마트폰을 거치대에 놓고서 왜 검색 기능을 쓰지 않는 거지? 기사는 달리기 시작했다. "기사님. 출발하시기 전에 목적지를 검색하셔야죠." "신호 대기할 때 할 거예요." "요즘 기사님들은 다들 스마트폰 음성 검색을 쓰잖아요?" 그는 입을 닫았다. 대신 사용하기 까탈스러운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손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무섭게 느린 속도로 검색하던 그가 말했다. "중구에는 신당동이 없는데." 신당동은 중구가 맞는다. 나는 화를 참고 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켰다. "제가 길을 설명할 테니까 일단 약수역으로 가주세요."

씩씩거리며 택시를 타고 가다 얼마 전 극장에서 겪은 일이 떠올랐다. 캐러멜 팝콘과 콜라 세트를 사고 싶었다. 무인 정산 키오스크 앞에 선 나는 당황했다. 아무리 터치스크린을 손가락으로 내려도 1인용 세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가기' 버튼을 여러 번 누르자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순식간에 늙은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제야 기사를 향한 마음속 짜증을 멈췄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한다. 돈은 사라진다. 선은 사라진다. 사람도 사라진다.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도록 반강제 당하고 있다. 기사는 서울의 거의 모든 목적지를 경험으로 익히며 택시를 운전해 왔을 것이다. 그깟 내비게이션 따위에 수십 년 경력의 두뇌 속 내비게이션이 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그 고집을 존중하기로 했다.

마샬도 무선 이어폰을 만든다. 나는 유선 이어폰을 계속 쓸 생각이다. 아직 유선은 더 편한 구석이 많다. 매번 충전할 필요가 없다. 선이 있는 건 오히려 장점이다. 한쪽만 잃어버린 뒤 "오른쪽 이어폰만 구합니다"라는 글을 당근마켓에 올릴 필요가 없다. 그렇다. 이것은 의미 없는 저항일 것이다.

이제 유선 이어폰을 생산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 지금 쓰는 이어폰이 고장 나는 순간 나는 '와이어리스'하고 '블루투스'한 신세계로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내 유선 이어폰은 음악을 귀로 전달하는 목적에 여전히 충실하다. 지금은 그거로 충분하다. 신당동이 중구든 아니든 신당동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기고자 :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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