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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들이 라켓과 배트를 내려놓았다.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와 야구 선수 이대호의 은퇴로 많은 스포츠 팬은 유난히 시린 가을을 맞이했다. 종목은 달랐지만 두 선수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불혹이 넘은 노장이었고 '테니스 황제'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명예로운 애칭이 있었으며 테니스와 야구의 역사가 된 기록을 남겼다.

스포츠는 종목별로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시기가 있다. 언젠가는 선수들을 보내주어야만 한다. 그에 비해 예술은 은퇴를 규정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 방탄소년단(BTS)에 빗대 '방탄노년단'으로 불리는 배우들이 연극 무대에서 티켓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이순재(88)는 연극 '아트'로, 신구(86)는 '두 교황'에서,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78)는 박정자(80)와 함께 연극 '러브 레터'에서 존재감을 발휘한다. 클래식도 만만치 않다.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77)는 지난달 새 음반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를 발매하고 전국 투어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피아니스트의 교과서'라 불리는 언드라시 시프(69)도 다음 달 내한 공연을 앞두고 팬들을 설레게 한다. 앞에 열거된 분들이 '아이고 형님' 해야 할 더 큰 어르신도 계신다. 현역 최고령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95)는 지난 6월 새 음반을 발매하고 이달 초 베를린필을 지휘하기도 했다.

스포츠가 화려한 금자탑을 쌓고 영예롭게 내려오는 분야라면, 예술은 에베레스트처럼 정상이 어딘지 가늠할 수 없는 산을 꾸준히 오르는 장르다. 그래서 좋아하는 선수의 은퇴로 느끼는 헛헛함을 때로는 예술이 위로해 줄 수 있다.

10~11월은 공연 성수기다. 각본 없는 드라마도 짜릿하지만 각본 있는 드라마엔 응축된 감동이 있고, 음표로 가득 채워진 악보엔 섬세한 여운이 담겨 있다. 노장의 아티스트가 펼치는 무대는 삶의 깊은 위안과 함께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경외감을 준다. 야구와 함께 공연도 가을 포스트 시즌이 시작됐다. 기고자 :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홍보책임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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