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4부작 대작 '니벨룽의 반지'

한국은 자타공인의 '콩쿠르 강국'이지만 약점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바그너의 4부작 '니벨룽의 반지'(이하 '반지')를 아직 자력으로 무대에 올린 적이 없다는 점. 나흘간 16시간이 걸리는 이 대작 오페라는 '총체 예술'이라는 작곡가의 지론처럼 오케스트라와 성악가, 무대 역량을 가늠하는 시금석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5년 러시아 명문 마린스키 극장(지휘 발레리 게르기예프)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첫선을 보였다. 17년 만에 다시 바그너의 '반지'가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라갔다. 독일 만하임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지난 7월 공연한 '반지' 프로덕션을 올해 19회를 맞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통해서 선보인 것. 지난번 무대가 러시아산(産)이었다면 이번은 독일산인 셈이다. 독일 만하임 극장 오케스트라와 성악가 등 총 240여 명의 '오페라 대부대'가 방한했다. 무대 연출은 한국 출신의 연출가 요나 김이 맡았다. 베이스 하성헌과 소프라노 고승희도 각각 파졸트와 프라이아 역으로 출연했다.

첫날인 16일 4부작 가운데 1부인 '라인의 황금'의 막이 올랐지만 무대에는 세 명의 처녀들이 헤엄치는 라인강변도, 신들의 성채인 발할라도 보이지 않았다. 무대 장치를 지극히 간소화한 미니멀(minimal)한 연출을 선보인 것. 대신 카메라맨이 무대 전후좌우를 부지런히 누비면서 촬영한 영상이 전면의 대형 스크린으로 전송되는 점이 이채로웠다.

탐욕에 눈이 멀어서 다툼 끝에 무대에서 쓰러지는 거인족(族)의 모습도, 무대 뒤편에서 초조하게 입장을 기다리는 성악가들의 모습도 모두 실시간으로 객석에 전달됐다. 연출가 요나 김은 이날 사전 관객 해설에서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무대 세트는 줄이는 대신에 카메라맨의 영상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연출 방향을 고민했다"면서 "시대적 배경에 구애받지 않고 성악가들이 자유롭게 노래하고 연기하는 장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전통적 아날로그의 영역인 공연과 디지털 영상의 결합은 최근 오페라 연출의 트렌드 가운데 하나다.

무대 위의 여백을 넉넉하게 채워준 건 무대 아래의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이날 공연은 중간 휴식 시간도 없이 정확히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지만, 만하임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지휘 알렉산더 소디)의 사운드에는 별다른 흔들림이 없었다. 음악 칼럼니스트 황장원씨는 "전통적인 바그너 오페라의 연주 규모에 비하면 단원 숫자는 다소 적었지만, 중요한 음악적 동기(動機)들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설계한 뒤 구상대로 밀고 나가는 지휘자의 뚝심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개인기는 화려하지만 바그너 오페라에 필수적인 '팀 플레이'에는 아직 약점을 보이는 한국 음악계의 향후 과제를 보여준 무대이기도 했다. 이번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반지'는 2부 '발퀴레'(17일), 3부 '지그프리트'(19일), 마지막 4부 '신들의 황혼'(23일)으로 이어진다. 기고자 : 대구=김성현 기자
본문자수 : 1461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