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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농구 재미없었다? 감독은 승리가 최우선＂

지난 15일 개막한 KBL(한국농구연맹) 2022-2023시즌은 지난 25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유재학 울산 현대모비스 총감독이 어느 팀 지휘봉도 잡지 않은 첫 시즌이라는 것이다.

프로농구 출범 후 25년 동안 벤치를 지켰던 유 감독은 지난 6월 사령탑에서 물러나겠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이날 모비스와 수원KT의 개막전도 업무차 떠난 필리핀에서 TV로 봤다고 한다. 모비스 벤치에는 그의 뒤를 이은 조동현 감독이 앉아 있었다.

유재학 감독은 대구 한국가스공사의 전신인 인천 대우증권에서 1997년부터 코치로 지내다 1998년 감독으로 부임했다. 2004년 울산 모비스로 팀을 옮겨 지난 시즌까지 지휘했다. 정규 리그 최다승(724승·승률 57.6%), 플레이오프 최다승(58승), 챔피언 결정전 최다 우승(6회) 등 세월이 녹아 있는 기록을 가졌다.

개막 직전인 지난 13일, 경기 용인에 있는 울산 현대모비스 훈련장에서 그를 만났다. 흰 머리카락이 늘었고 턱과 뺨엔 수염이 덥수룩했다. "이제 TV에 나올 일이 없으니깐, 대충 하고 지내요" 하고 '껄껄' 웃었다.

◇'만수'에게도 번아웃이

유재학 총감독은 시즌을 마친 뒤 '더는 못 하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고 한다. "쌓여온 피로 때문에 너무 고단했다"고 했다. 머릿속에 만 가지 전술이 있다고 해서 '만수' 소리를 듣던 명감독도 '번아웃'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퇴임을 발표하고 미국에서 사는 가족에게 날아가 3개월을 보냈다. 그전까지는 길어야 1년에 한 달만 있다가 바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25년 동안 즐거웠던 때를 묻자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2006-2007시즌 처음 우승할 때 챔피언 결정전에서 당시 포워드였던 이병석으로 하여금 부산 KT 포인트 가드 신기성을 수비하도록 해 꽁꽁 묶었던 일, 2018-2019시즌 시작 전 미국에서 문태종을 만나 전격 계약을 이끈 뒤 우승한 일…. 본인이 고안한 수비 전술에 대해서도 재밌다는 듯 한참을 이야기했다. 후회하거나 아쉬웠던 일에는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했는데, 적진 않죠" 하고는 고개를 돌려 얼마간 말을 잇지 않았다.

유재학 감독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물었다. 지나치게 수비에 힘을 써서 팬들이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유 감독의 대답은 명료했다. "이기는 방법을 찾는 게 감독 역할이고, 흥행은 구단 다른 곳에서 고민해야죠. 수비를 못하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재밌는 경기 끝에 리그 꼴찌 하면 재미있다고 박수를 쳐줄까요?"

◇한국 농구에 쓴소리

가까운 거리에서 보아온 한국 프로농구를 물었다. "안양 KGC의 우승을 폄훼하는 건 아니지만, 설린저가 저희한테 왔으면 모비스가 우승하지 않았겠어요?" KGC는 2020-2021시즌 막판 제러드 설린저라는 뛰어난 기량의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다. 그 결과 플레이오프 10전 10승으로 기대 이상의 우승을 차지했다. 외국인 선수에 따라 성적이 판이한 한국 농구의 현주소를 보여준 시즌이었다. "WKBL(한국여자농구연맹)처럼 외국인 선수가 없는 모습도 보고 싶어요. 국내 선수들이 스타로 떠올라야 인기가 살아나죠."

KBO(한국야구위원회)처럼 KBL(한국농구연맹) 이사회 구성원을 단장이 아닌 구단주로 해야 한다는 실무 이야기도 서슴지 않았다. "계약직인 단장이 이사회에 나서면 그냥 자기 자리 지키는 데에만 골몰하죠. 조금 더 기업 고위직에 있는 분들이 이사회에 나가야 각자 팀에 정말 필요한 걸 연맹에 이야기하고, 그 결과 리그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유재학 감독은 현재 울산 현대모비스의 총감독으로 있다. 조동현 감독을 위한 '인수인계' 기간이라는 것이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둘만 있을 때 따로 이야기하고요, 웬만해서는 안 하려고 하죠. 조 감독은 갖고 있는 게 많아요. 정말 잘할 겁니다."

"경기장에 있으면 눈을 질끈 감고 응원하는 팬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가끔씩 있거든요. 정신없는데도 그걸 볼 때마다 참 기뻤는데, 이제는 느낄 수가 없겠네요. 기쁨을 오랫동안 누린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죠. 정말 감사했습니다, 24년 동안." 기고자 : 용인=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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