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책이 있다. 사실 책은 남녀노소 누구라도 위험한 길로 이끌 수 있는 비밀의 문이다. 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접하고 새로운 시대에 눈을 뜨고 나면 현실의 굴레를 당연한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던 이들이 변혁을 꿈꾸기 때문이다.

독일 낭만주의 화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케르스팅(Georg Friedrich Kersting·1785~1847)은 1813년, 나폴레옹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 독일 지역에서 조직된 '뤼초 자유군단'에 자원했다 돌아온 직후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짙푸른 겉옷을 입고 멋스럽게 빗어 넘긴 금발 머리에 손을 짚은 채 책에 몰두한 이 남자가 그림의 주문자다. 흐트러짐 없이 반듯한 책장과 상자들이 단정한 그의 성정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푸르른 벽면을 가로질러 사방으로 뻗어나간 건 램프의 그림자다. 긴 양초 셋을 꽂아둔 걸 보니 남자는 밤을 새울 모양이다. 깊은 밤 그의 서재는 책장 넘기는 소리가 크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하겠지만, 마치 불빛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 책 속의 너른 세상을 떠다니는 남자의 마음에서 얼마나 요란한 폭풍우가 몰아칠지는 알 수가 없다.

18세기 말 계몽주의로부터 영향을 받고 나폴레옹 전쟁을 겪은 독일의 지성인들은 전제정치를 거부하고 독일 통일을 요구하며 봉건적 공동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유로운 개인이 되고자 했다.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책 읽는 모임이 늘어나자 정부는 이들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권위주의적 사회에서 책 읽는 사람은 모두 기득권층에 위험한 존재다. 기고자 :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812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