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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공급과잉 심각한데 현실과 거꾸로 가는 법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만성적인 쌀 공급 초과 현상이 더 심화될 전망이다. 또 정부가 남아도는 쌀을 의무적으로 사들여야 하니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게 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시장격리(정부 매입) 의무화로 2030년까지 매년 연평균 1조원 넘는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 5600억원(전망)인 쌀 매입 예산이 8년 뒤인 2030년에는 2.5배인 1조4000억원으로 불어난다는 것이다. 이미 2005년부터 3700만석(298만t) 쌀을 사서 보관하는 데 5조원을 썼다.

매년 재정적자를 기록할 만큼 나라 살림이 빠듯한 상황에서 쌀을 사는 데 정부 예산이 들어갈 경우 농가 지원을 위한 다른 사업이 위축되거나 농업에 대한 투자가 어려워질 수 있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공익직불금(농가 지원금) 5조원 확보가 불가능해지고, 청년 농업인 육성, 스마트팜 등 농업의 디지털 전환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쌀 공급과잉 심화, 품질·가격 저하

정부의 쌀 의무 매입에 대해 전문가들이 가장 큰 부작용으로 꼽는 것은 공급과잉의 심화다. 농민들이 정부가 사줄 것으로 믿고 쌀 생산을 늘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쌀 초과 생산량이 올해 25만t에서 2030년 64만t이 돼 3배 가까이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격리를 의무화하지 않았을 경우 2030년 초과 생산량(24만t)보다 170%(40만t)나 더 늘어나게 된다.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공급과잉이 심화되면 쌀값이 떨어져 오히려 농민들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 2005년 1인당 연간 81㎏이었던 국내 쌀 소비량은 작년 57㎏으로 30% 급감했다. 같은 기간 쌀 초과 생산은 연 20만t에 달했다.

육류 등이 쌀보다 더 많이 소비되며 '쌀=주식(主食)'이라는 개념도 약화되고 있다. 정 장관은 "현재 최고가 기준 19만원(80㎏ 기준)인 쌀 가격은 1~2년 내 17만원으로 떨어져 고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해온 쌀 품질 고급화도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같은 가격으로 의무 매입하면 농민들이 고품질 쌀보다는 생산량이 많은 품종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작물까지 의무 매입 요구 번지나

정부는 매입을 의무화하지 않아도 필요한 경우 충분히 쌀을 매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올해 정부가 사들이기로 한 쌀의 규모는 90만t으로 문재인 정부 5년간 연평균 수매량(50만t)보다 80%나 많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정부 의무 수매를 법으로 강제하려 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분위기가 쌀 이외 작물로 확대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실제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는 밀·콩·배추·양파 등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를 요구하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기초농산물까지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게 되면 연간 10조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내년 우리나라 아동·보육 예산과 맞먹는다. 정부 개입으로 민간 유통이 축소되는 등 시장 기능이 약화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개입 부작용 日·유럽서 확인

해외에서도 정부의 쌀 시장 개입이 오히려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2011년 태국은 농민 지지를 얻으려 한 잉락 총리 내각이 시중 가격보다 1.5배 비싸게 쌀을 수매했고, 2012년 쌀 생산량이 23% 증가했다. 하지만 2012·2013년 재정적자가 각각 13조원 안팎으로 발생했고, 비리 사건까지 겹치며 결국 잉락 총리는 실각·구속됐다.

1970~1980년 유럽에서는 버터·쇠고기 등 농산물 최저 가격을 정부가 보조금으로 보장하자 생산이 급증하고 가격이 급락했다. 정부 재정은 악화됐고, 농가 소득은 오히려 줄었다. 저가 농산품을 수출했다가 덤핑(가격 후려치기) 수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정부가 수매해 비축한 와인이 호수를 이루고 버터가 산을 이룬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일본 역시 1960~1970년대 쌀 생산이 급증한 반면, 소비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정부의 의무 수매 조치로는 도저히 가격 하락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매년 8000억엔(약 8조원) 안팎을 쏟아붓고 있지만 쌀 가격(60㎏)은 1만8505엔(1986년)에서 작년 1만2903엔으로 30% 하락했다.

[그래픽] 1인당 연간 쌀 소비량 추이 / 쌀 초과생산량 및 필요 예산 전망 기고자 : 최형석 기자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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