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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배운 지 일 년 반 정도가 되었다. 한 곡을 일 년 동안 연습하기도 하고 어떤 곡은 두 달 만에 마치기도 하는데, 대체로 원장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연습을 지속한다. 초반에는 창문 달린 학원 연습실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초등학생들이 다 큰 어른이 왜 그렇게 못 쳐요? 하는 표정으로 들여다보고 가고는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건반 앞에서 헤매는 일은 여전하다.

나에게는 박자와 음정에 엄격한 바흐나 모차르트보다 쇼팽과 같은 낭만주의 음악가의 곡들이 좀 더 편했다. 악보에서 음악기호 '루바토'를 보다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이 기호가 적혀 있으면 해당 구간에서 연주자는 악보 초반부터 지켜 오던 기존의 템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다. 보통 '템포 루바토'라 적는데, 여기서만큼은 음의 길이를 연주자의 감정과 해석에 따라 늘였다 줄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탈리아어인 루바토는 영어의 'rob(훔치다)'와 본래 같은 뜻을 지닌 단어인데, 악보에 기입되었을 시에는 '시간을 훔치다'란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내가 치려는 음의 바로 앞에 위치한 음이나 뒤쪽 음의 시간을 훔쳐 와 자신의 것으로 이어 붙이고, 훔친 시간을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원래 템포를 되찾는 것이다.

똑같은 루바토가 두 번 연주될 수는 없다는 점은 클래식 음악의 큰 매력이다. 아직 루바토를 완벽히 구현할 수 있는 기계는 없기에 인간만의 영역이라는 것도. 이는 곧 감정을 완벽히 구현할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연주자에게 곡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 그 곡이 가진 감정에 완벽히 감응하게 되는 순간, 루바토 연주가 가장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어떤 음의 시간을 빼앗아 어떤 음에 주어야 좋은지를 곡에 대한 몰입도가 높을수록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이러한 음악의 신비로움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나에게도 그러하다. 기고자 : 김선오 시인·시집 '나이트사커'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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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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