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작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수필집 '자기만의 방'에서 '만약 셰익스피어에게 재능 있는 누이가 있었다면 그 누이가 셰익스피어 같은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러면서 그 누이가 여자이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누이는 학교 근처조차 갈 수 없어 교육받지 못했을 것이고 10대를 벗어나기도 전에 사랑 없는 결혼을 했을 것이며, 자유로운 외출이 허락되지 않아 타인의 삶을 알지 못해 작가로서 안목을 기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에게 필요한 것으로 상당한 액수의 돈, 자기만의 방,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들었다. 여성이 창작하는 데 필요한 것을 말한 셈이다.

과거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서 여성 작사가와 작곡가가 드문 이유도 다르지 않다. 창작을 위한 기본 조건을 갖출 수 없다 보니 여성이 작사하고 작곡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20여 년 전 대중음악 관련 기사를 조사하느라 신문을 읽다가 여성이 작사·작곡을 하여 직접 노래까지 한 음반의 광고를 발견했고, 그때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1934년에 발매된 이 음반에는 김정숙(金貞淑)이 노래한 '외로운 나그네'와 '가신님에게'가 실려 있는데, 이 중 '가신님에게'는 김정숙이 작사·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곡이다.

비록 한 곡뿐이지만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실제로 당시 음반 광고에서는 김정숙을 일러 "송도(松都)가 낳은 희세(稀世)의 미인"이라며 "예술가 자신이 작사·작곡을 하여 부른 가반(歌盤)은 실로 처음"이라 했다. '가신님에게'는 떠난 임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을 애상적인 선율로 표현한 노래다. "끊어진 기타나마 줄을 골라서 임이여 보내소서 그대의 노래"라는 마지막 부분에서 노래 속 화자의 미련은 절정에 다다르며, 여기에 가늘고 얇은 김정숙의 미성이 노래의 슬픔을 더했다. 그를 더 알고 싶어 자료를 찾아 헤맸으나 더 이상의 신상 관련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최근 여성 싱어송라이터 방의경의 독집 음반인 '내 노래 모음'(1972년 발매)이 모 경매 사이트에서 1600만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발매되자마자 방송과 판매가 금지되었던 희귀 음반이다. 지난 주말에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시와'의 단독 공연 '숨 쉬는 시간'에 다녀왔다. 읊조리듯 건네는 그의 노래에 마음이 차분해졌고 따뜻한 노래에서 위로받았다. 사라진 김정숙은 수많은 여성 싱어송라이터에게서 새로 태어난다. 영감이 되고 숨결이 되고 노래가 되어서. 기고자 :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1265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