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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2030] "기후 위기 때문에 아이 안 가질래"

    윤수정 문화부 기자

    발행일 : 2022.10.21 / 여론/독자 A2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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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 기후변화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겠대." 기후변화와 출산. 두 단어가 이렇게 같이 쓰인다고? 얼마 전 만난 친구가 "사촌 여동생 A와 나눈 대화"라며 들려준 말에 든 첫 생각이었다. 20대 초반인 A는 '랜선 이모'를 자처하며 내 친구의 유치원생 아들을 예뻐했다고 한다. 친구는 자신과 나이 차가 꽤 나서 아직도 어려 보이기만 한 A가 그렇게나 아이를 예뻐하는 게 신기했고, "아이가 매우 좋아도 결혼은 되도록 늦게 하라"는 농을 던졌다. 그러자 A가 말했단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세상이 언제 망할지도 모르잖아요. 결혼은 아직 모르겠는데 아이는 확실히 안 갖고 싶어요."

    이 이야기는 한동안 그 친구와 내가 속한 또래 여성들의 채팅방을 뜨겁게 달궜다. 치솟는 교육비와 주택 값, 여유로운 삶을 위한 딩크족의 길, 출산 여성의 경력 단절…. 결혼 적령기 여성들이 으레 그렇듯, 이미 수많은 출산 기피 사유를 고찰하는 데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한 우리였다. 그럼에도 '기후변화'는 그런 우리에게조차 너무나도 신선한 주제였다.

    놀라웠던 건 A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MZ세대 글들이 소셜미디어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단 거다. "이렇게 망해가는 지구를 아이에게 물려주는 건 몹쓸 짓인 거 같아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해 청소년 500명에게 물었더니 58%가 '기후 위기 때문에 자녀 갖는 걸 고민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국내에만 있는 현상도 아니었다. 영국 여론조사 업체 '원폴'이 지난해 4월 미국인 일부를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Z세대(18~23세)의 78%가 '기후 위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이 같은 현상을 '기후 우울증'으로 통칭한다. 일상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으로 무력감을 겪는 이들이 출산까지 포기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나와 친구들의 토론은 요즘 MZ세대가 무력함과는 오히려 거리가 먼, 그 어떤 세대보다도 현 상황을 고치고자 치열하게 고민하기에 출산 포기까지 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날 때부터 미세 먼지로 호흡하는 데 익숙한 요즘 10대, 20대가 기후변화를 대하는 자세는 정말 일상의 구석진 곳에서까지 적극적이고, 심지어 학구적이다. 내가 취재를 담당한 대중가요 분야만 봐도 요즘 10대 K팝 팬은 좋아하는 아이돌 앨범을 사면서 그 포장재가 지구 환경에 보탬이 될지, 아니면 쓰레기가 될지 고민한다. 쓰레기라 판단되면 앨범 대신 온라인 음원을 사자고 권하면서도, 이 역시 과용하면 데이터 저장 과정에서 전기가 많이 쓰여 탄소 배출만 늘어난다는 내용을 각종 뉴스레터로 작성해 자기들끼리 주고받는다. 덕분에 요즘 멜론 등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는 MZ세대가 주축인 아이돌 환경 연합으로부터 "재생에너지를 써달라"는 촉구 메일을 다량으로 받고 있다.

    이들은 어쩌면 누구보다 기후변화를 치열하게 고민하기에, 그걸 해결하지 못한다는 좌절감 또한 다른 세대의 배로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요즘 저출산율의 또 다른 복병이 이 좌절감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고자 : 윤수정 문화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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