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萬物相] 은마 아파트

    김홍수 논설위원

    발행일 : 2022.10.21 / 여론/독자 A30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서울 대치동 은마 아파트 자리는 비가 조금만 와도 물에 잠기는 저습지였다. 1970년대 서울시의 영동 구획정리로 네모반듯해진 이 땅을 세무공무원 출신 한보주택 정태수 회장이 헐값에 사들여 4400가구 아파트 단지를 지었다. 정 회장은 "물과 바람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서 반드시 성공할 명당"이라고 했다. 1978년 아파트 분양 당시 오일쇼크가 터지고 아파트가 안전 자산으로 주목받으면서 100% 분양에 성공, 1000억원 넘는 현금을 손에 쥐었다. 정 회장은 "목수가 자기 집을 지으면 망한다"면서 별도 사옥을 짓지 않고 은마아파트 상가를 그룹 사옥으로 썼다.

    ▶사통팔달 대로변에 자리 잡은 은마아파트는 당시만 해도 보일러와 엘리베이터를 갖춘 최신식 아파트였다. 이후 경기·휘문·중동·숙명여고 등 강북 명문고들이 속속 주변에 자리 잡으면서 교육열 강한 중산층의 최선호 아파트가 됐다. 대치동 일대에 학원들이 집결하면서 은마아파트는 '사교육 1번지'를 상징하는 아파트가 됐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은마아파트는 낡은 아파트의 대명사가 됐다. 극심한 주차난, 시멘트 종유석이 자라는 천장, 지하실 쓰레기 악취, 녹물 수돗물 등등. 그래도 아파트 값은 40년 내내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분양가 2330만원 아파트가 40년 새 121배 올라 작년 말 28억원 신고가를 기록했다. 재건축 대박 꿈 때문이라고 한다. 집주인은 대박을, 세입자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이를 악물고 은마아파트에서 버텼다.

    ▶문재인 정부가 재건축 아파트를 받으려면 2년 실거주를 해야 한다고 하자 집주인들이 부랴부랴 입주했다. 이들은 악취에 놀라 40년 묵은 지하실 쓰레기 2300t를 치웠다. 방치했던 외벽 도색 작업도 했다. 그 와중에 희소식이 나왔다. 서울시가 5778가구(공공주택 678가구 포함)의 35층짜리 새 아파트를 짓는 은마아파트 재건축 계획안을 승인했다.

    ▶공공주택을 빼면 늘어나는 가구 수가 고작 676가구뿐인데 공사비 수조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숙제로 남아 있다. 일각에선 주민들이 어떻게 해서든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로 계획을 바꿀 것이란 전망이 많다. 1970~80년대 소설 속 아파트는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내면의 황폐화를 다루는 소재로 등장했다. 2000년대 이후엔 탐욕과 절망이 충돌하는 대립의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어느 소설가는 한국의 아파트 광풍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올라탄 욕망의 바벨탑'이라고 정의했다. 은마아파트를 보면 크게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기고자 : 김홍수 논설위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249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