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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인 전세금 올해 6466억… 버티는 집주인 상대로 자구책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33㎡짜리 빌라에 전세로 세 들어 사는 김효진(23)씨는 두 달째 자기가 임차인을 구하러 다닌다. 그는 2년 전 이 집에 보증금 1억7000만원을 내고 들어왔다. 지난 8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고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했더니, "미안하지만 지금은 돈이 없어서 임차인이 들어와야 보증금을 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 뒤로도 집주인이 계속 같은 말만 하자 결국 김씨가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그는 "2개월간 공인중개사 사무실 수십 곳에 전화를 돌려 전세 매물로 올려두고 임차인을 구해 달라고 사정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방을 보러 온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전세 시장 침체로 서울에서 전세 매물 호가가 2년 전 수준까지 떨어진 경우도 나오면서 곳곳에서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집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임차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자기가 직접 임차인을 집주인에게 구해다 주기 위해 발품을 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한 경우 집주인을 상대로 내용증명을 보내거나 소송을 내는 일도 있다.

실제 올해 들어 "보증금을 떼였다"고 호소하는 세입자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한 사람 가운데, "보증금을 못 돌려받고 있다"고 신고가 들어온 것은 3050건이고 보증금 규모는 6466억원에 이른다. 이미 작년 연간 규모(2799건·5790억원)를 웃돈다. 전세금 반환 보증에 가입한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지 못하면 일단 HUG가 대신 보증금을 내주고, HUG는 집주인에게 이 돈을 청구하게 돼 있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전용면적 84㎡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직장인 최모(36)씨는 지난 8월 집주인을 상대로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을 냈다. 최씨는 4억2000만원에 계약을 하고 들어왔는데 시세가 3억원대로 떨어졌는데도, 집주인이 "똑같은 금액을 내고 들어오는 임차인이 생겨야 돈을 돌려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최씨는 "이미 새로 이사 갈 집 매매 계약까지 했는데 보증금을 안 준다. 그래서 신용대출까지 받아 잔금을 치렀다"며 "대출 이자 등 내 손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소송밖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전세금 반환 소송을 해도 최소 6개월 이상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금이 부족하거나 이사가 급한 다수 세입자들은 집주인에게 사정하거나 자기가 대신 세입자 구하기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울 서대문구 84㎡ 아파트에 전세금 6억5000만원을 주고 사는 직장인 임모(33)씨도 최근 매일같이 집주인에게 연락해 새 임차인을 얼른 구해 달라고 읍소한다. 그는 "세입자가 안 구해진다는 집주인이 계속 거래하던 부동산 한 곳에만 물건을 올려놨다고 하길래, 간곡하게 설득해 인근 부동산 여러 곳에 물건을 등록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경기도 일산의 한 빌라에 세 들어 사는 이상현(41)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다음 달 서울 동대문구 자기 소유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가 이사를 간다고 해, 본인이 자기 집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빌라 주인으로부터 보증금 2억원을 못 받는 바람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김씨는 "내 집에 사는 세입자를 나가게 해 드리려면 나도 보증금을 받아야 한다"며 "내 세입자는 매일 나에게, 나는 매일 빌라 주인에게 독촉을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주변에서 "보증금을 떼였다"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하다보니 부동산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보증금 안 떼이는 법'과 같은 글이 하루에도 여러 건 올라오고 있다. "기간 만료 전 계약 갱신 거절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증거를 남겨라" "내용증명을 보내라" "보증금을 받기 전에는 절대 이사를 하면 안 된다"와 같은 방법들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전세 물건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21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4만5990건으로 2년 전(약 1만건)의 4.5배가 됐다.

강서구에서 공인중개사를 하는 박모(38)씨는 "화곡동 인근 49㎡(15평) 매물 시세가 작년만 해도 2억5000만원이었는데 요즘엔 2억3000만원으로 내려도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다"며 "전세 매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요즘엔 100개가 넘게 쌓여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 사고 기고자 : 김광진 기자 이해인 기자 유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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