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강원대병원 고위험 산모 치료센터
의사·간호사·행정직원 18명 참가

23일 오전 춘천마라톤 출발지인 강원도 춘천 공지천 인근. 운동복 차림의 참가자 18명이 출발선에 모였다. 코로나 때문에 3년 만에 춘천마라톤에 나선 이들은 "오랜만에 달리려니 긴장된다" "다치지만 않게 잘 달려보자"며 서로 격려했다. 손에는 '고위험 산모의 건강을 지켜드립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강원대병원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 소속 의료진과 직원들이다. 임신중독증 등 임신 과정에서 질병이 생겨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산모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센터다. 의사, 간호사와 행정 직원까지 18명이 단체로 춘마에 출사표를 던졌다. 대부분 10㎞를 달렸고, 황종윤(52) 센터장만 올해 처음 풀코스에 도전했다.

이들이 단체로 춘천마라톤에 참가한 건 센터가 처음 만들어진 2015년부터였다. 황 센터장은 "전국 최초로 고위험 산모 치료센터가 생겼던 터라 팀워크를 다지는 계기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당시 레지던트를 하며 병원에서 살다시피했던 이세진(36) 교수는 "2015년 춘천마라톤이 하필 야간 당직 다음 날이어서 솔직히 별로 내키지 않았다"며 "답답한 병원에서만 지내다가 막상 대회에 나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동료들과 함께 달리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후 춘마는 센터의 연례 행사가 됐다. 교수 3명, 전공의 2명, 간호사 10명으로 시작한 센터가 교수 6명, 전공의 7명, 간호사 15명으로 성장하는 사이 춘마 도전자도 매년 늘어갔다. 황 센터장은 "우리는 춘마의 추억을 품고 1년을 보냈다"며 "사진과 에피소드를 공유하며 추억을 곱씹었다"고 했다.

코로나가 덮쳐 2020년과 2021년 춘마가 열리지 못하는 동안, 센터 의료진에게는 또 다른 힘겨운 마라톤이 시작됐다. 강원대병원은 코로나 환자를 받을 수 있는 국가 지정 진료 기관이었다. 황 센터장은 "강원도 동해나 태백, 멀게는 충북 지역에서 온 코로나 산모의 분만을 맡기도 했다"며 "음압 병상을 찾아 돌고 돌다 우리 병원까지 오는 길에 이미 진통이 많이 진행돼 구급차에서 내리자마자 응급실에서 아이를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지난 3년간 강원대병원에 입원한 코로나 산모는 100여 명에 달한다.

코로나 산모가 분만할 때 의료진은 3㎏이 넘는 레벨D 방호복과 전동식 호흡 보호구(PAPR)를 착용한다. 헬멧 모양의 PAPR 장비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고 호흡도 불편하다. 통풍이 안 돼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이 교수는 "다른 수술방과 달리 분만실은 신생아의 체온을 고려해 에어컨을 틀기가 어렵다"며 "분만 도중 방호복을 입은 채 탈진해서 실려 나간 의료진도 있었다"고 했다.

황 센터장은 "우리가 포기하면 코로나 환자들은 갈 데가 없지 않으냐"며 "우리 의료진이 무너지면 코로나 환자가 무너지고,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는 사명감으로 버텼다"고 했다. 원지윤(29) 간호사는 "너무 힘이 들어 더 이상은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같은 방향으로 뛰는 동료들을 보며 힘을 내는 마라톤처럼 서로 끌어주고 응원했다"고 말했다.

이날 춘천마라톤 10㎞를 먼저 완주한 팀원들은 결승선에서 올해 처음 풀코스에 도전한 황 센터장을 기다렸다. 힘겹게 달려오는 그가 보이자 다 같이 달려가 함께 결승선을 통과했다. 4시간39분17초 만에 완주한 그는 "코로나를 함께 버텨온 동료들을 생각하며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고 했다.

이 교수는 "올겨울 다시 코로나 대유행이 온다고 하니,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우리 의료진도 몸과 마음을 다시 다잡고 힘을 내겠다"고 했다. 기고자 : 춘천=이해인 기자
본문자수 : 1782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