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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업체들 수거 여력 없어

"원래 트럭이 다녀야 하는 길에도 폐지를 쌓아야 하는 판국이에요. 폐지가 이 추세대로 쌓이면 폐지 둘 곳이 없어, 주택가나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는 종이 쓰레기를 수거해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말 그대로 '대란'이 나는 거죠."

지난 24일 오전 서울의 한 폐지 압축장 관계자 A씨는 압축장 안팎에 수북이 쌓인 폐지 더미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압축장 밖 길에는 가로 1m, 세로 2m, 높이 1m 박스 형태로 압축된 1t(톤)짜리 폐지 묶음 더미가 170여 개 쌓여 있었다. 170t 규모 폐지가 거리에 나앉은 셈이다. 압축장 안은 폐지 운반 트럭이 간신히 오갈 정도의 길만 남겨둔 채 폐지 묶음이 커다란 벽처럼 곳곳에 솟아 있었다. A씨는 "여기 보이는 것 외에 별도 창고에 폐지 2000t이 더 있는데도 공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전국에서 '폐지 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민들이 배출한 종이 쓰레기는 수거 업체가 거둬들여 각 지역의 폐지 처리 업체(폐지 압축장)로 보낸다. 각 업체는 받은 폐지를 압축한 후 종이를 만드는 국내외 제지 공장에 판다. 제지 공장에서 새 종이나 재생 용지를 만들 때 폐지를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불황으로 종이 수요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게 문제다. 그 바람에 제지 공장에서 폐지를 사가지 않아 곳곳에 폐지가 쌓이고 있다. 지난달 국내 제지 공장의 폐골판지 재고량은 15만t에 이른다. 평상시 재고량 7만~8만t의 두 배에 달한다. 전국 폐지 압축장의 재고량도 지난달 5만8000t으로 1년 새 35%가 증가했다.

여기다 최근 국제시장에는 유럽산 폐지가 헐값에 쏟아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독일과 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의 제지 공장 중 생산을 멈춘 곳이 여럿이라 폐지를 해외로 팔고 있다는 것이다. 수요는 줄고 공급이 넘치니 상반기 1t당 200달러 안팎이던 폐골판지 수출 가격이 지난달에는 129달러까지 떨어졌다.

인천의 한 압축장 관계자는 "일주일에 20t 트럭 30대씩 채워 공장으로 보내던 게 최근에는 3~4대 보낼까 말까 한 상황이라, 아파트에서 폐지를 수거하는 업체들이 추가로 문의를 해와도 다 돌려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동네 분리수거장에 종이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할 것이란 뜻이다.

업계에선 '줄도산' 얘기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폐지 압축장들이 모인 한국자원수집운반협회 등은 지난 19일 일제히 전국 지방자치단체 게시판에 "국산 폐지의 물량 적체가 심각해, 폐지 대란이 우려된다"며 민원을 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 소장은 "환경부에서 수도권 공터나 매립지 등을 적극 발굴해 수십만t 이상의 폐지를 비축할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기고자 : 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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