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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가을이다. 얼마 전에는 차를 타고 지나가며 바라본 강가의 가을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내게 남은 가을을 헤아려 보았다. 적다면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고, 많아도 고작 오십 번 내외일 것이다.

오십 년은 잘 가늠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오십 번의 가을은 너무나도 적다. 오십 일의 시간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단풍잎 하나, 노랗게 바랜 풀잎 하나가 모두 아쉽고 아득하다. 한 계절의 복판에서는 그 풍경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다음 계절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새로운 빛과 냄새와 온도를 품고 들이닥친다.

사실 이러한 새로움은 지난가을에도 겪은 것이다. 작년에도 그러했듯이, 가을 날씨에 익숙해질 때쯤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끝없는 반복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새로움이 탄생하는가. 계절의 이질적인 양상을 감각할 수 있는 몸이 내게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수많은 잎이 피었다 지지만 그중 같은 잎은 하나도 없다. 수많은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죽어가지만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이토록 무한한 세계의 다채로움이 때로는 잘 믿기지가 않는다.

릴케는 '가을'이라는 시에서 잎이 지고, 지구가 떨어지고, 시를 적고 있는 손과 우리 모두가 아득한 곳으로 추락한다고 썼다. 그러나 시의 결말부에서 그는 이러한 한없는 추락을 두 손으로 받아주는 한 존재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릴케의 시에 종종 등장하는 절대자적 존재는 자주 '신'으로 해석되고는 한다. 이러한 해석은 편리하지만, 독자로서는 인격화된 신이 아닌 다른 주체를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둠 속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모든 것을 받아주는 존재라면 우리를 감싸고 있는 시간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어쩌면 신을 믿는 우리의 마음 자체일 수도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안심된다. 오십 번의 가을이 끝나고 내가 없어진다는 것은 죽어 없어진 나의 몸이 가을의 일부가 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떨어진 잎이 땅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나무를 이루게 되는 일과 같을 것이다. 세계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 안의 모든 것을 받아준다. 기고자 : 김선호 시인·시집 '나이트 사커'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039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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